[퍼온 글] 우리말 사랑 운동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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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동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10-18 22:45 조회9,4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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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 올려진 글들을 읽어보다가 만나게 된 어느 글에서 좋은 내용이라 생각되었고, 더구나 본문 중에 우리 회의 명칭이 언급되어 있기에 우리 회원들도 같이 읽어보시라고 염치불구하고 복사해왔습니다. )
[◆ 밤좀도님 시사 작품]
우리말 사랑 운동을 꿈꾸며 2016.06.25
아래 글은 MBC라디오시대와 미래에셋생명보험이 공동 주최한 '2016년 행복미래설계 공모전'에서 입상한 필자의 글입니다. 졸작이지만 즐겁게 읽어 주시면 가문의 영광이겠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꿈이 국어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국어 과목을 무척 좋아했다. 국어 공부가 아주 재미있었고 배울수록 신바람이 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과목 별로 수업을 듣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국어박사로 통했다. 국어와 국어 계통의 과목인 고전, 한문 등은 언제나 학급에서 가장 잘하는 학생으로 이름을 떨쳤다. 다른 과목은 실력이 보통이었지만 국어 계통 과목은 항시 최고 등급인 ‘수’를 받았다. 국어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히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했다. 또한 순우리말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고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국말은 좀 싫어하는 경향을 보이곤 했다. 순수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국말을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학창생활을 하다가 만약에 대학교에 들어가면 국어국문학을 전공해 한글이나 우리말을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한글의 발전과 순우리말 보급 및 전파에 이바지하며 사는 것이 소망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꿈을 이루려면 중고등학교 국어선생이 되거나 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타고난 가난한 집안과 공부에 대한 노력 부족으로 대학 문턱을 밟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병역의 의무를 다한 뒤에 바로 생업의 현장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었기에 꿈은 일단 접어두고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생업의 현장에서 발버둥 치며 지금껏 살아왔다. 군대를 전역한 뒤에 직장생활을 한지는 30년가량 된다. 직장생활을 하며 30대 초반에 결혼을 했고 슬하에는 대학생 자녀가 둘 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4인 가족의 가장인 셈이다. 한 여자의 남편이고 두 자녀의 아버지로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소속된 직장에서는 구성원으로서 맡은 일에 열정을 기울이고 있다. 가난한 환경이었지만 부모나 세상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덕택에 빚은 없이 소시민으로서 무난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작지만 주택과 승용차도 마련해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자녀 둘은 아직 학생이지만 본분을 지키며 학업에 충실하고 있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지금 때때로 사는 일이 무엇인지 가끔 회의감이 드는 경우가 있다. 날마다 생업을 위해 직장으로 출근해 일을 하고 근무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되고 있다. 틈틈이 직장의 동료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음주가무로 삶의 무료함을 달래는 경우도 있지만 삶이 따분하거나 권태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인 우리말 사랑을 한 번 실천해 보는 것이다. 우리말 사랑을 실천하려면 우리말을 많이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서점에서 우리말에 관한 책을 구입해 읽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우리말에 관한 내용의 프로그램은 열심히 찾아서 보는 편이다. 그렇지만 직장이란 조직에 얽매여 우리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상당히 버겁다. 업무가 무거워 퇴근하면 쉬고 싶고 휴일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심신을 편안하게 내버려 두고 싶다. 그렇지만 나중에 직장에서 은퇴하면 본격적으로 우리말 공부나 연구를 해 볼 참이다. 우리말이랄까 한글은 요즘 상당히 위축돼 있는 느낌이다. 옛날에는 한문 때문에 위축됐고 일제 강점기엔 일본말 때문에 고난을 겪었다. 지금은 영어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유식한 티를 내려고 어려운 외국말을 버젓이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를테면 아주 아름답고 쉬운 ‘열쇠’란 말이 있는데도 영어 ‘키(key)’를 즐겨 쓰고, ‘아내’란 말을 두고 굳이 ‘와이프(wife)’를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요즘은 정보화 시대여서 우리 한글의 파괴가 심히 우려스러울 지경이다. 축약어를 즐겨 쓰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초성 글자만 쓰는 경우도 자주 있어서 소통에 지장이 많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글이나 우리말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까 아주 걱정스럽다. 직장에서 은퇴하면 우리 사회를 위해 좀 뜻깊은 일을 해 보자는 생각에서 우리말 사랑 운동에 적극 뛰어들 생각이다. 이런 일은 사실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돈은 되지 않고 되레 돈을 써야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내가 어려서 꿈꾸던 일을 하는 것이기에 나름대로 보람과 긍지는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노후의 생활비는 연금과 저축해 둔 돈으로 충당이 가능할 것이니까 걱정이 없다. 몸만 건강하면 생활비는 그다지 크게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 사랑 운동을 펼치려면 그것과 관련이 있는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단체를 찾아보니 한글학회, 배달말학회, 우리말학회, 우리말글사랑행동본부, 한글사랑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 등 여러 곳이 있다. 나처럼 학사나 석사, 박사 학위가 없지만 우리말과 글에 대한 사랑이나 열정이 있는 사람이 참여해 활동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한두 곳 단체에 가입해 의욕적으로 활동을 펼쳐볼 것이다.
사전을 뒤져 보면 우리가 평소에 몰랐던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렇게 많은 말들을 제대로 쓰지 않고 사장시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또한 멋진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말을 가져와서 쓰니 한국인으로서 무척 울적하고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게 커다란 죄를 짓는 느낌이다. 한글이나 우리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공부하려면 아무래도 대학 문을 넘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에 기회를 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야간대학이나 방송통신대학을 알아볼 생각이다.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공자가 논어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읊었듯 무언가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공부에 따른 학비 따위는 술 한 잔 덜 마시고 맛난 음식 덜 먹고 비싼 옷 덜 입으면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노력과 열정이 중요하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무언가 세상을 위해 작지만 이름 하나 정도는 남기고 하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심신이 성한 이상은 우리말 사랑 운동을 펼치다가 이승을 하직하고 싶다. 주시경, 최현배. 이희승. 허웅, 이숭녕, 이오덕 등 한글과 우리말을 평생토록 연구한 사람을 존경한다. 나는 그런 분들처럼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지라도 일단 노력은 할 생각이다. 우리말 체계상으로 볼 때에 잘못된 언론보도나 관공서 공문 등을 파악해 바로잡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어법적으로 불합리한 표지판 등은 관활 관공서에 연락해 바로잡게 할 생각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순우리말을 좀 더 적극적으로 쓰도록 계도하고 홍보할 생각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말을 많이 알아야 한다. 알아야 면장을 하던 지적을 하던 할 게 아닌가? 우리말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어렵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말 공부를 또바기 할 것이다. 당장 큰 성과가 나지는 않더라도 시나브로 익히다 보면 나중에 크게 쓰일 날이 오지 않겠는가? 출처불명, 국적불명의 낯선 말들에 의해 오염된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나의 사명이고 존재이유란 생각이 든다. 우리말 사랑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나니 삶이 한층 더 값지게 다가오는 기분이다. 다음에 어떤 순우리말이 나의 지적 호기심이나 욕구를 채워줄지 기대하니 가슴이 어린애마냥 두근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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