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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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중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2-06 02:22 조회16,4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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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퍼센트의 가능성, 그것이 나의 길이다.
'엄마,꽃나무도 가져가나요?' 아들의 말이 다시 가슴을 파고든다.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가 그토록 소중하여진 것, 내가 물을 주어 기른 꽃이니까, 내가 직접
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로 보호해 주었고,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니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왜 이제야 생각나는 걸까.
우리가족이 이곳에 산 지 10년이 되던 해에 장성한 아들과 함께 서울엘 갔다. 나는 어머니 뵈러 자주 다녔으나 큰아이는
미국으로 온 후, 처음 나선 나들이였다. 아들은 옛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분주한 가운데도 어느 날 인가 화곡동을 다녀온
듯싶었다. 눈에 익은 건물은 화곡초등학교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아들은 어렸을 때처럼 고향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뭇없이 사라진 옛집이 허망하여 울먹이던 슬픈 눈망울의
소년은 이미 아니다. 유년의 꿈을 키워온 그곳이 낯설게 변한 현실에, 잃어버린 동심이 안타까워 입을 다물고 있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났으니까. 이제는 담담한 마음으로 예전에 살았던 곳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학교에 다녀본 적은 없으나
유일하게 화곡초등학교가 남아 있다는 위로를 받으며. 비록 눈에 보이던 고향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마음속의 우리 집은 갖가지 장미가 많아 장미의 집이라 불리던 곳. 커다란
그네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노을을 보며 황홀해 하던 곳. 밤이 맞도록 별을 세며 별들의 이름을 불러 보던 곳.
정원 한 귀퉁이에 어쭙잖게 놓여있던 미끄럼틀 모래밭에서 강아지와 함께 뒹굴며 지내던 곳이기에 추억 속의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어릴 때 몸과 마음이 자라며 처음 접한 곳이었고 꿈꾸고 자라던 시기였기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 향수가 사무칠 때면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 있다는 것,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마음 깊숙한 곳에 아들의 고향은 예전의 모습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훗날 아들은 자녀에게 아빠의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안개빛 눈망울이 되어 기억 저 너머를 더듬으며 행복한 동심
속에 빠져 있겠지.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가 진리처럼 다가오리라.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니까“아빠는 내가 힘들 때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
‘남편의 생일에 아들이 그림 한 장을 그려 아빠에게 주었습니다. 하얀 종이에 의자 하나 동그마니 그려져 있는 그림.
그 그림에 아빠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담았습니다. 백 마디의 말이나 어떤 표현보다도 짧고 굵직한 한마디에 남편은 세상을 얻은 것 같이 가슴 벅찼을 겁니다.’
그녀의 행동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감동이라는 물결을 흐르게 했고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 하나를 심어 놓았다. 이 소문을 바다를 건너 벨기에의 초콜릿 장인 “조셉 드랍”이 알게 되었다.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가 그토록 소중하여진 것, 내가 물을 주어 기른 꽃이니까, 내가 직접
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로 보호해 주었고,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니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왜 이제야 생각나는 걸까.
우리가족이 이곳에 산 지 10년이 되던 해에 장성한 아들과 함께 서울엘 갔다. 나는 어머니 뵈러 자주 다녔으나 큰아이는
미국으로 온 후, 처음 나선 나들이였다. 아들은 옛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분주한 가운데도 어느 날 인가 화곡동을 다녀온
듯싶었다. 눈에 익은 건물은 화곡초등학교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아들은 어렸을 때처럼 고향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뭇없이 사라진 옛집이 허망하여 울먹이던 슬픈 눈망울의
소년은 이미 아니다. 유년의 꿈을 키워온 그곳이 낯설게 변한 현실에, 잃어버린 동심이 안타까워 입을 다물고 있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났으니까. 이제는 담담한 마음으로 예전에 살았던 곳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학교에 다녀본 적은 없으나
유일하게 화곡초등학교가 남아 있다는 위로를 받으며. 비록 눈에 보이던 고향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마음속의 우리 집은 갖가지 장미가 많아 장미의 집이라 불리던 곳. 커다란
그네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노을을 보며 황홀해 하던 곳. 밤이 맞도록 별을 세며 별들의 이름을 불러 보던 곳.
정원 한 귀퉁이에 어쭙잖게 놓여있던 미끄럼틀 모래밭에서 강아지와 함께 뒹굴며 지내던 곳이기에 추억 속의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어릴 때 몸과 마음이 자라며 처음 접한 곳이었고 꿈꾸고 자라던 시기였기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 향수가 사무칠 때면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 있다는 것,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마음 깊숙한 곳에 아들의 고향은 예전의 모습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훗날 아들은 자녀에게 아빠의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안개빛 눈망울이 되어 기억 저 너머를 더듬으며 행복한 동심
속에 빠져 있겠지.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가 진리처럼 다가오리라.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니까“아빠는 내가 힘들 때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
‘남편의 생일에 아들이 그림 한 장을 그려 아빠에게 주었습니다. 하얀 종이에 의자 하나 동그마니 그려져 있는 그림.
그 그림에 아빠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담았습니다. 백 마디의 말이나 어떤 표현보다도 짧고 굵직한 한마디에 남편은 세상을 얻은 것 같이 가슴 벅찼을 겁니다.’
그녀의 행동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감동이라는 물결을 흐르게 했고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 하나를 심어 놓았다. 이 소문을 바다를 건너 벨기에의 초콜릿 장인 “조셉 드랍”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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